안녕하세요? 곽선생님입니다. 오늘은 알베르토 망구엘의 '밤의 도서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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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09 - [2. 책을 읽어드려요/자기계발서] - [서평] 질서 너머 (1)
1. 책을 사랑하는 사람
이 책의 저자, 알베르토 망구엘은 작가이자 번역가, 편집자, 국제펜클럽 회원입니다. 구겐하임 펠로십과 프랑스 예술문화훈장을 수상했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독서가이자 장서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여러 책을 쓰기도 했으며, 프랑스 정부에서 예술·문화 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알베르토 망구엘을 어떻게 부르면 좋을까요? 저는 그를 "세계 최고의 책덕후"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오덕후'라는 말의 어원은 '오타쿠'입니다. 글에 앞서, 오타쿠라는 단어의 뜻을 살펴보고 가요.
오타쿠(일본어:オタク、おたく、お宅、ヲタク)는 특정 대상에 집착적 관심을 갖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일본어로, 주로
일본의 만화 및 애니메이션 팬들을 의미한다. 비슷한 의미로 너드, 긱 등이 있으며, 특정 대상에 크게 빠져 있는 경우를 일컫는 말로 의미가 상통한다. 출처는 위키백과.
우리나라에서는 '오타쿠'라는 말을 '오덕후'라고 순화아닌 순화를 해서 사용합니다. 일종의 밈(meme)화가 된 것이죠. '오덕후'에서 어미 '~덕후'를 떼어 와, 여러 단어에 붙이면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됩니다. 예를 들어, 전자기기를 좋아하는 전자기기덕후, 영화를 좋아하는 영화덕후, 게임을 좋아하는 겜덕후 등으로요. 그러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책덕후'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오타쿠'라는 말이 참 재미있어요. 보통 한 분야에서 많은 지식과 경험을 쌓은 사람을 전문가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전문가'는 사회의 인정이 있어야 합니다. 자격증을 따야지 전문가로 인정되기 마련입니다. 또는 석사나 박사 학위를 따고 논문을 써야합니다. 학술지 등에 등재되면 더 권위를 얻고, 사람들이 더 높은 수준의 전문가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타쿠는 누군가 전문가로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자신의 분야에 몰두합니다.
책과 오덕후를 결합한 책덕후라는 단어는 참으로 재미있고도 숭고합니다. '책의 전문가'라는 점이 부와 명예를 당장 가져다주지는 않습니다. 직업이 될 수도 없습니다. 주변에서 "저 사람 책 많이 읽으니까 멋있어"라는 말을 들을 순 있겠네요. 책덕후는 순전히 책을 좋아한다는 마음으로 책을 읽고, 사모으고, 나만의 도서관을 만들게 됩니다.
저자, 알베르토 망구엘이 그러합니다. 순전히 책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독서광이 되었습니다. 그만의 도서관이 있고요. 망구엘 씨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책을 읽습니다. 그리고 아무런 이유 없이 책과 책을 연관 짓기를 즐깁니다. 특히 이 책의 제목처럼, '밤의 도서관'을 좋아합니다. 본능과 직관에 따라 닥치는 대로 책을 집어 읽고, 밤이 주는 애매모호함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독서합니다. 책 속의 내용뿐 아니라 책을 읽는 경험 자체를 사랑하는 분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책과 도서관을 물질적인 것에 한정시키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망구엘 씨는 우리가 익히 아는 종교, 철학, 과학 등 한 분야의 전문가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다만 다양한 책을 읽으며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정도의 여러 학문적 깊이와 넓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책' 자체에 대한 여러 사유를 보여주십니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은 그 정체성을 찾기 힘들 정도로 여러 요소, 요소들이 짬뽕이 되어 주제를 파악하기 힘듭니다. 그래도 제 나름대로 정리한, 이 책을 관통하는 문장은 이렇습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 책에게 보내는 헌사."
2. 책은 ○○○다.
밤의 도서관은 총 열 다섯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각 "책은 ○○○다."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아래의 열다섯 개 키워드를 '○○○'속에 넣어서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신화, 정리, 공간, 힘, 그림자, 형상, 우연, 일터, 정신, 섬, 생존, 망각, 상상, 정체성, 집
일반적으로 우리는 책을 사물로 인식합니다. 특히 종이책을요. 3~400페이지 정도로 이루어진 몇백 그램의 네모난 물건입니다. 파손이 쉬우니 잘 관리해야 하고요. 그런데 저자는 책을 단순히 물건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위의 열다섯 가지 개념으로, 굉장히 추상적으로 봅니다. 이런 소주제 속에서 여러 인문학적인 개념과 역사 속 이야기 등을 들어 설명합니다. 읽다 보면 어째서 책이 ○○○인지 설득됩니다.
신기하게도, 위의 개념을 넣어 '책은 ○○○다.'라고 문장을 만들어 읽어보면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납득이 됩니다. 하나하나 짚어볼까요?
신화: 신화로서의 책
정리: 책을 정리하기
공간: 공간 속의 책
힘: 시대 속에서 책이 지니는 힘
그림자: 나오는 책의 어두운 면과 책의 아픔
형상: 책과 도서관의 형상
우연: 우연찮게 발견된 고대의 책들
일터: 도서관과 사서
정신: 책과 정신세계의 상호관계
섬: 책은 섬처럼 고립된 것일까? 아니면 시대를 관통할까?
생존: 정신적 생존 수단으로서의 책
망각: 머릿속에서 잊히지만 다시 재구성되는 책의 내용
상상: 상상 속의 책과 도서관
정체성: 나의 정체성을 규정해주는 책
집: 도서관, 내 정신적 고향
이를 우리의 생각을 곁들여서 세 가지로 나누어볼까요? (물론 딱 나누어지지는 않지만요.)
1) 역사 속의 책
2) 사상으로서의 책
3) 물건으로서의 책
살펴보겠습니다.
1) 역사 속의 책입니다. 책을 한 권 집어볼까요? 음, 제가 좋아하는 책 중의 하나인 이문열 작가의 '젊은 날의 초상'이 좋겠어요.
발표는 1979년 12월호의 문학사상에서, 출간은 1981년 민음사에서 했습니다. 올해로 30년 째네요. 오랜 시간 젊은 사람이든 어르신들이든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있는 책입니다. 이 책 한 권의 역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그러나 '책의 역사'는 책 한 권이 언제 발매되었고, 언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등의 단편적인 것에 그치지 않아요. 길고 크게 보면 최초로 기록된 고대의 회계 문서부터, 파피루스나 죽간, 양피지 등을 거쳐 인쇄술의 발달로 도서의 보급이 이루어진 지금까지의 역사가 있습니다. 이른바 책이란 녀석의 '종의 역사' 입니다. 또는 책을 보관하는 도서관들을 옛날부터 지금까지 살펴보며 그 역사를 살펴볼 수도 있어요.
저는 그보다는 책의 역사를 '독자의 경험'으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저에게 젊은 날의 초상은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냐면요. 스무살 초반, 대학교에 다닐 때 이야깁니다. 전 강남(서초) 쪽에서 자취를 하고 있어서 강남역에 많이 놀러 갔답니다. 보통 술 마시고 친구 만나고 하기 바빴는데요. 그날은 웬 바람이 불어 산책을 했어요. 강남역까지 걸어가고 신논현역까지 삼사십 분을 마저 걸었답니다. 그러다 보니 엄청 큰 교보 건물이 있고, 큰 교보문고가 있더라고요. 그때도 책을 종종 읽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진심은 아니었던지라 당시 처음으로 강남역 교보문고에 발길을 옮기게 되었답니다. 거기서 사온 민음사 책들 중 하나가 '젊은 날의 초상'이었습니다.
대략 30년 전에 발간된 책을 읽으며 저의 모습을 많이 비추어 봤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가 'F학점 두개'를 쌍권총 두 개로 비유하는 것이네요. 제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 그리고 그 사건을 계기로 오프라인 서점에 들르는 것을 좋아하기 시작했고요, 한국 소설이라는 것이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이렇게 책을 읽어드리는 것도 '젊은 날의 초상'과 그 책을 입양한 작은 사건이 계기가 되었어요.
이처럼 책은 책으로 존재할 뿐만 아니라, 책을 구매하고 읽는 모든 경험들에서 독자에게 역사를 부여합니다. 그 와중에서 뒤이을 사상으로서의 책과, 공간으로서의 책도 의미가 있게 됩니다. 마저 이야기를 이어가 볼까요?
2) 사상으로서의 책입니다. 이 책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 중 하나는 다음과 같아요. '이상적인 한 권의 책'이 있다는 부분입니다. 아까 말씀드렸듯, 책에는 역사가 있잖아요. 그리고 책은 발전해요. 나중에 나오는 책은 이전 내용을 포함하고 한 걸음 나아가요. 즉, 책이 담고 있는 사상이 독자에게 영향을 주고, 그 독자는 저자가 됩니다. 저자는 다시 업그레이드된 사상을 담아 글을 씁니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 나중이 되면, 언젠가 존재할 "마지막 한 권의 책"은 세상 모든 사상을 담은 완벽한 책이 아닐까요?
물론 그런 책이 실제로 있을 것이라곤(혹은 생길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구절이 담고 있는 내용이 너무 마음에 들어요. 단순히 물질적인 것에 책을 국한시키지 않습니다. 학문일 것이고, 종교일 것이고, 이념일 것입니다. 그리고 무한한 발전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참 희망찹니다. 정신, 생존, 망각, 상상, 정체성 등의 소주제도 이런 내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즉, 책은 인간 정신 그 자체이며 사상을 나타내는 표현 수단입니다. 그리고 다시 인간에게 영향을 줍니다.
3) 마지막은 물건으로서의 책입니다. 물질적인 면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네요. 그러나 이를 앞서 말씀드린 3~400페이지의 나무 변형물로 생각할 수는 없고요. 책(물질)의 존재와, 책이 차지하는 공간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이라고 봐야겠습니다.
저자는 물건으로서의 책 중 '공간'을 제일 매력있게 느끼는 듯합니다. 책의 공간성이라 함은, 곧 책이 존재하는 곳일 테고, 대표적으로는 도서관이 있습니다. 저자는 본인만의 도서관을 만들었습니다. 손 하나 뻗으면 어떤 책이든 잡힐 수 있게끔 만들었고요, 특히 애매모호하고 본능적인 정신상태가 찾아오는 밤의 도서관에서 독서하는 것을 즐깁니다.
도서관의 형태와 도서관이 담은 사상 등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계속 발전해왔습니다. 단순히 서류를 보관해 기록물을 입반출하는 것이 목적이던 때가 있습니다. 또는 사상과 문화의 보관소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때로는 전쟁의 약탈물로 역할을 하기도 하고, 권위와 힘을 담기 위한 장소가, 꿈나무들에게 교양과 꿈을 길러주는 희망의 장소가 되기도 합니다. 이는 하나의 발전 과정으로 이해하기보다는 도서관이 지닌 다양한 형태로서 바라보는 것이 맞겠습니다.
저는 아직 도서관이라고 할 만큼 많은 종이책이 있지는 않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종이책과 종이책을 읽으며 다가오는 모든 경험을 너무나 사랑합니다만, 요새는 전자책을 많이 보게 됩니다. "디지털 화면에서는 도통 글자가 읽히지를 않아!"라며 만날 천날 투덜대면서 말입니다. 전자기기 하나로 여러 책을 들고 다닐 수 있다는 장점이 너무나 커서요. 저자는 전자책에 다소 비판적이지만, 종이책과 서로 장단점을 보완하며 공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완전히 동의합니다.
그래도 저에게 추억과 영감을 주는 녀석은 단연 종이책입니다. 저는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코너마다 진열되어 있는 책을 살펴보곤 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시대가 어떤 생각을 많이 하고, 어떤 지혜를 필요로 하는지 생각해보곤 합니다. 요즘은 마음의 힘을 길러주는 자기계발서와 주식 책이 참 많더라고요.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또, 읽었던 책을 예쁘게 진열해둔 뒤에 사색에 잠기고는 합니다. 책 하나하나마다 그 녀석들이 나에게 걸었던 말들이 떠오릅니다. 몇 년이 흐른 뒤에 그 말들을 다시 곱씹는 지금에는, 그 말들이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생각이 달라지고, 경험이 쌓였으니까요.
제일 짙은 미소가 얼굴 위로 떠오를 때는, 책이 나에게 사람을 떠올려줄 때입니다. 힘들어하는 옛 연인에게 웨인 다이어의 '행복한 이기주의자'라는 책을 빌려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대학 시절 독서동아리에서 함께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나 '소유냐 존재냐', 헤세의 '싯다르타'를 보며 옛사람들을 떠올립니다. 다른 인연과 함께 갔던 교보문고에서 구매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보고 추억에 잠깁니다. 마지막으로 언제나 제 글을 읽고 생각을 말해주는 친구가 있습니다. 아마 제가 살아있고, 책이 존재하고, 인터넷이 존재하는 한, 글감으로 삼은 책들을 바라볼 때마다 그 친구를 떠올릴 것입니다.
이러니 종이책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종이책을 독서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매력적입니다. 책 한 권을 펼쳐 놓고, 커피 한 잔과 함께 사각거리는 종이를 넒기는 과정이 그렇습니다. 가끔은 미친 듯이 줄을 긋고 필기를 하며 읽고 싶어질 때, 미래의 내가 이 책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지 설레기도 합니다. 책을 고르기 위해 발품을 팔아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책을 꺼내 훑어보기도 합니다. 저에게 물건으로서의 책은, 많은 경험을 주는 고마운 친구임과 동시에 추억과 영감을 주는 예술 작품이기도 합니다.
3. 당신에게 책은 무엇인가요?
책은 책이죠. 하지만 책은 책 이상의 가치를 지니기도 합니다. 인간의 사상과 경험이 녹아있고,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발전합니다. 사람들은 항상 "사람은 책을 읽어야 해"라고 말합니다. 그 속에 숨어있는 말은 책 밑에 숨어있는 사상을 읽으라는 것이고, 경험을 간접적으로 쌓으라는 말이고, 그럼으로서 발전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책의 역사는 그 자체로 인류의 역사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또, 종이책을 만지고 바라보며 느끼는 경험과 살아나는 추억은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저에게 책은 예술 작품입니다. 당신에게 책은 무엇인가요?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 책에게 바치는 헌사, 책을 책 이상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책. 알베르토 망구엘의 밤의 도서관, 일독을 권합니다.
이번 시간은 여기까지 할게요. 다음에는 마이클 센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어드릴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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