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곽선생님입니다. 오늘은 두 편에 걸쳐 '질서 너머'를 읽어드릴게요. 그런데 이번 편에서는 책의 배경과 함께 한 가지를 더 살필 예정입니다. 저자인 조던 피터슨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 책을 읽어보는 것 만큼 '조던 피터슨'이라는 사람과 그 사상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책이 왜 '질서 너머' 인지. 그리고 이 양반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또 그 이유는 무엇인지. 다양한 자료로 살펴볼게요.
바로 서평을 읽고 싶은 분은, 글의 맨 마지막에 있는 링크를 참고하세요. (예정)
1. '사피엔스'와 '질서 너머'
질서 너머와, 저번에 읽어 드린 '사피엔스'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관심 있으시면 읽어보세요.)
'사피엔스'를 관통하는 주제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호모 사피엔스부터 시작된 인류의 발전? 과학 혁명으로 인한 인류의 미래? 모두 맞지만, 저는 '약속'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지 혁명을 통해 사피엔스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실재하는 것마냥 약속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족과 국가, 종교를 만들어 수많은 사피엔스가 하나로 뭉칠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농업 혁명과 과학 혁명을 통해 엄청난 자본을 축적하고, 투자하여 전 지구적 통합을 이루었습니다.
이 '약속'은 바꾸어 말하면 사회 구성원의 합의입니다. 작게는 규칙부터, 조금더 크게는 법까지, 크게는 선·악과 윤리 규범까지 사람들이 약속한 것입니다. 우리는 합의를 통해 이 약속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어느새 이 약속들은 스스로 진화하고,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회적인 약속에 구속받습니다. '이건 해야 해'와 '저건 하면 안돼'. '이건 좋은 일이야'와 '저건 나쁜 일이야'. '행복한 삶은 돈과 권위, 명예가 있는 삶이야'.나 '지금 소득 수준으로는 행복할 수 없어'. '나는 혼자가 좋아. 사람들은 너무 피곤해.'나 '주말에 군대 동기들 만나니까 힘내서 일하자.' 과연 우리에게는 진정한 자유가 있을까요?
약속은 곧 사회적인 질서입니다. 조던 피터슨은 '질서 너머'라는 이름으로 이런 사회적 구속(질서)과 인간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주의해야 할 것은, 조던 피터슨은 결코 질서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질서는 인간 본질에 의한 것이며,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니 조던 피터슨의 사상에 대하여 반드시 알아봐야 합니다. 이를 통해 책을 잘 이해할 수 있을겁니다.
2. 조던 피터슨 파헤치기
아래의 글은 위키피디아, 나무위키, 구글 검색, '질서 너머' 책의 내용을 참조했습니다. 참조에 있어서는 객관적 사실만 사용했으며, 가치적인 서술은 다 제 생각입니다.
조던 피터슨(Jordan Bernt Peterson) 교수는 본인을 '고전적 자유주의자'라고 하며, 반대자들은 그를 '대안 우파'라고 합니다. 즉, 자유주의자이자 보수주의자입니다.
피터슨 교수의 생각을 읽어보기 위해서, 그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이 제일 재밌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혐오와 갈등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독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크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유구한 전통(?)을 가진 지역 갈등, 그 뿌리가 되는 한국의 보수와 진보 갈등. 과거의 운동권과 군부 세력의 갈등. 이제는 그 운동권이 기득권이 되어 젊은이들과 갈등합니다.
요즈음에는 이런 갈등이 한국 고유의 것으로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세계적으로 인종 혐오, 자국 이성 혐오, 식습관(채식인지, 육식인지. 환경 문제도 얽혀 있습니다.)에 대한 상호 혐오, 성적 지향에 대한 혐오 등 공통적인 혐오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본래 정치적 올바름은 평화와 사랑, 자유와 공정 등 본질적인 가치를 중심으로 혐오에 대응하기 위한 논리였습니다. 그러나, 조던 피터슨에 따르면, 이런 정치적 올바름을 지지하는 사람이나 단체는 권위주의적인 양상을 띄기 시작했습니다. 이성적인 사고가 아닌 공감과 집단 행동을 통해 다른 사람의 개성과 가치를 억압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다소 공감합니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개념은 어느새 그 자체가 하나의 헤게모니가 된 것 같습니다. '나와 너가 다르다'라는 본질을 잊은 채, '내가 옳으니 너는 틀렸어' '내 사상이 옳으니 따라'라는 가치의 강요가 나타납니다.
법과 사상, 문화는 항상 변화합니다. 물론 그 아래 평화와 인권, 인간의 보편적인 행복과 같은 포기할 수 없는 본질적인 가치가 숨어 있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본질적인 가치 또한 역사를 거듭하며 수정되고 발전해왔음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예컨대,
① 과거에는 전쟁으로 민족을 지키고, 약탈로 배부르게 하는 것이 평화라고 여겨졌지만, 지금은 '전쟁의 필요성이 없기 때문에 지속되는 미묘한 갈등관계'가 평화로 보입니다(현대에는 국가 간 협동이 더 많은 부를 창출합니다).
② 인권은 본래 기득권의 전유물이었습니다. 국가를 막론하고 높은 계급에 있는 사람만 시민으로 인정받았지, 다른 인종이나 여성, 어린이 등은 소유물로 여겨졌습니다. 모두에게나 보편타당한 인권 개념이 등장한 것은 인류 역사에서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③ 과거에 행복이란 신의 말씀을 따라 선하게 사는 것이고, 내 가문과 번영을 누리며 재산을 축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행복은 도파민, 노르아드레날린, 세로토닌의 분비에 따른 결과로 밝혀졌습니다. 과학적 설명이 아니더라도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 가정과 돈이 없더라도 자유롭게 사는 것 등이 행복으로 여겨집니다.
조던 피터슨 교수는 정치적 올바름을 비판하는 이유중 하나로, 정치적 올바름 자체가 이미 특정한 사상들에 오염되어 있음을 듭니다. 사람과 사상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습니다. 모든 혐오를 탈피하자고 주장하는 정치적 올바름이 이미 다른 사상을 배척하고 혐오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피터슨 교수는 다소 급진적인 주장을 하고, 비판도 많이 받습니다만, 이 글에선 다루지 않겠습니다.
피터슨 교수는 '무조건 질서를 따라야 한다', '질서는 항상 옳다'나 '어떤 질서도 따르면 안 된다', '지금 사회 질서는 엉망이다', '질서는 허상이다'와 같은 양 측의 극단적인 주장을 모두 배척합니다. 그러니 오히려 하나의 질서를 강요하는 정치적 올바름에 비판적일 수밖에 없습니다(피터슨 교수의 생각에 따르면요). 사회에 존재하는 질서가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을 인정하며 그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으라고 말합니다. 이 사회가 불합리할 수 있지만, 보다 나의 내면에 집중해 행복과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 이것이 조던 피터슨이 말하는 '질서 너머'입니다. 피터슨 교수가 자유주의자이자 보수주의자로 읽히는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3. 마치며
이번 글에서는 사피엔스와 질서 너머의 핵심 내용 비교, 조던 피터슨 교수가 정치적 올바름을 대하는 견해를 통해 책을 읽기 위한 준비를 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질서 너머'의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루겠습니다.
2021.07.12 - [2. 책을 읽어드려요/자기계발서] - [서평] 질서 너머 (2) - 完
2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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