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1984를 읽고, 이런저런 생각을 나누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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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18 - [2. 책을 읽어드려요/인문교양서] - [서평]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1. 이야깃거리
저자, 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한 번쯤 들어보셨을 만한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 '조지 오웰'이라는 이름이 사실 필명이라는 것, 알고 계셨나요? 조지 오웰의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입니다. '조지'라는 이름은 흔한 남자 이름을, '오웰'이라는 성은 영국의 강에서 따온 이름이에요. 이 글에서는 조지 오웰이라고 적겠습니다. 아무튼 이 조지 오웰은 1903년 인도에서 태어나, 1950년 영국에서 타계했어요. 어린 시절부터 식민지 교육이나 관료주의, 군인화 교육 등에 반감을 가졌나봐요. 그래서 공부에 흥미도 없었고 성적도 영 시원찮았답니다.
그 후 파리에서 밑바닥 생활을 하고, 스페인 내전에 참가하며, 세계 2차대전을 겪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러 인간군상과 이념의 대립을 겪었어요. 이러한 경험이 <동물농장>, <카탈루니아 찬가>, 그리고 이 글에서 다룰 <1984>를 탄생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1984>를 설명하는 키워드를 몇 개 적자면, 아무래도 첫 번째는 '빅 브라더Big Brother'입니다. 빅 브라더는 1984에 등장하는 가상의 나라, '오세아니아'의 당대표(?)입니다(정당 할 때 그 당이요). 아무래도 '수령 동지'정도로 생각하면 됩니다. 빅 브라더는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듣고, 모든 것을 듣고있는 존재입니다. 벽면에는 어떻게 보더라도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빅 브라더의 포스터가 붙여져 있습니다. 'Big brother is watching you'라는 슬로건이 이렇게 잘 시각화가 될 수가 없어요. 사실 당=빅 브라더라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당은 TV와 비슷한 '텔레스크린'으로 당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합니다. 그리고 '사상경찰'은 몇 년의 시간을 잠복하여 사상죄를 저지른 사람을 잡아냅니다. 아무도 모르게요.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체계에 불만을 품다가, 몇 년을 정체를 숨겨온 핵심 당원들에게 들켜 모진 고문과 정신개조(?)의 과정을 거쳐 결국 몸과 마음이 모두 박살나고 맙니다. 책 말미에 밝혀지지만, 아마 이 빅 브라더는 당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낸 가상의 존재일겁니다.
두 번째는 '신어Newspeak'입니다. <1984>안의 많고 많은 장치 중에서 왜 신어를 골랐냐 하면, 언어는 사고를 지배하니까요. 다양한 생태계를 가진 언어를 새롭게 편찬하고, 이 '신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벌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좋다'라는 뜻을 나타내는 단어는 'good'만 있으면 되고, 반댓말로 'ungood'만 있으면 된다는 식입니다. 단적으로 말해, 사람들의 창의적인 사고를 제한하고 어리석게 만드는 일입니다. 인간들을 '기계화'한다는 인상도 받았습니다. 이런 신어를 사용해 당은 역사를 바꿉니다. 기억나는 문구가 있네요.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작중 등장하는 유라시아, 동아시아 등의 나라와 주 무대가 되는 오세아니아는 전쟁과 동맹을 반복합니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전 동맹 관계였던 나라와 다시 전쟁 관계로 돌입하게 되면, 이전의 기록은 모두 말살됩니다. 원래부터 전쟁하던 것처럼 바뀌는 거죠. 신기한 것은, 이 기록 말살은 '기록국'의 당원들이 진행합니다만, 이 사람들은 스스로 역사를 바꾸면서도 새롭게 바뀐 역사가 '진실'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이 '이중사고Doublethink'입니다. 모순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죠. 이중사고 또한 신어입니다. <1984>안에서 사상과 관련한 범죄가 많이 다뤄지니만큼, 사고를 규정하는 언어를 손대버린다는 점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세 번째는 '전쟁'입니다. 저번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어드렸는데요. 현대의 전쟁 억지력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예컨대 옛날 식민지 개척 시대에는, '필요'가 있어서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시장이 필요했고, 노동력이 필요했습니다. 즉, 전쟁으로 인한 이득이 컸던 시대입니다. 반면에 현대에는 전쟁을 하는 것이 손해이기 때문에 이전과 달리 나라 간의 전쟁이 쉽사리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전이나, 국지전 같은 특수한 경우는 제외하고요. <1984>안의 전쟁은 사실상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동아시아 간의 약속입니다. 전쟁을 지속함으로써 당의 중앙집권체제를 공고히 하고, 사람들을 국가에 예속시키며, 전쟁국을 상대로 사람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당의 절대적인 권력을 보장받습니다. 또, 시장의 형태나 사회 체계, 기술의 발전 또한 전쟁을 위한 것에 국한합니다. 시장을 굴리는 것은 덤이고요. 각 나라의 권력자들은 사실 다른 나라를 정복하며 얻는 이득보다는 전쟁 자체를 수단으로서 체계를 유지하려는 것입니다. 전쟁의 필요성이 없어 전쟁이 억지되는 현대와, 전쟁이 필요하여 전쟁하는 '척'하는 <1984>의 무대가 하나의 동전의 양면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키워드를 중심으로 <1984>의 배경과 내용을 저의 생각을 곁들여 짧게 읊어드렸습니다. 사실 <1984>는 줄거리 자체가 중요하지는 않아요. 물론 아주 몰입감 있는 이야기 구조라는 것은 사실이지만요. 그보다는 작가가 설계한 가상의 세계와 장치, 소름끼칠 정도의 세밀한 묘사가 눈길을 끕니다. 무엇보다 현대 사회에서도 위화감 없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쓴, 저자의 예지력이 놀라울 따릅니다. 아직까지 위쪽 정부와 이념 대립을 하고 있는 우리나라 국민으로서도 깊게 다가옵니다. 한편, 다음 장에서는 우리 사회의 '빅 브라더'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2. 모두가 빅 브라더가 된 사회
제가 인터넷 방송을 그리 즐겨보는 편은 아닙니다만, 몇 년째 재미있게 보고 있는 유튜버가 있습니다. 바로 만화작가 '이말년'의 방송입니다. 인터넷 방송계에서는 '침착맨'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데요. 학생 때부터 이 아저씨의 만화를 재밌게 봤기도 했고, 방송도 자극적이지 않고 말을 너무 재미나게 잘하는 분이라서 계속 구독중이랍니다. 몇 년 전부터 이 양반의 방송에는 쌍천만 작가, 만화 '신과 함께'를 그린 '주호민' 작가가 자주 등장합니다. 침착맨의 방송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어느새 본인 또한 트레이드마크인 민머리를 자랑하며 유튜브를 하고 계신데요. 이 주호민 작가가 논란에 휘말린 적이 있습니다. 링크를 첨부할게요.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200918/103000574/1
저야 소소하게 아무도 안보더라도 서평 쓰는 낙으로 사는 사람이니, 주호민 작가에게 이 글이 닿을 염려는 없지만..... 혹여 옛 논란을 불러일으켜 상처가 되었을까,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논란이 된 발언에서, 주호민 작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요약입니다.)
만화는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지만, 건드리면 안 되는게 있다.
전쟁의 피해자라든지, 선천적인 장애라든지 그런 것들을 희화화하면 안 된다.
옛날 만화의 검열은 국가에서 했지만, 지금은 시민이 한다. 시민 독재의 시대가 열렸다.
'자신이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라는 생각이 있다.
당시에는 이 발언이 '기안84' 작가의 만화 논란과 결부되어, 부적절한 표현을 옹호한다는 식으로 비추어 졌답니다. 사실 주호민 작가는 어떤 특정한 사상을 옹호하려고 이런 말을 한 것이 아니었지만요. 아무튼 이 주호민 독자가 발언한 '시민 독재'를 '모든 시민이 빅 브라더가 된 사회'라고 풀어서 정의해 보면 어떨까요?
바야흐로 모든 시민이 빅 브라더가 된 사회가 열렸다고 생각합니다. "Big brother is watching you"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SNS의 시대입니다. 모든 사람이 SNS를 이용합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안하는 사람은 찾을 수 있어도, 카카오톡을 안 쓰는 현대인은 찾기 힘들죠. 그리고 카카오톡에서는 나의 프로필 사진, 배경 사진 등을 게시할 수 있습니다. 카카오톡과 연동되는 카카오스토리는 그 자체로 SNS 기능을 제공합니다. 카카오톡은 우리의 개인정보를 수집하여(혹은 우리가 카카오톡에 입력함으로서) 이를 사람들에게 공개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은 "나 이렇게 잘 살고 있어!"라는 과시의 역할을 하지만, 때로는 "나만 못 살고 있구나."라는 자괴감을 주기도 합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소름끼치는 사실은, 이제는 우리 삶 전반에 카카오가 손길을 뻗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카카오맵, 카카오택시, 카카오 헤어샵,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 보이스톡, 카카오톡 영상통화 등등....... 아무튼 이런 특성은 비단 카카오톡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그 외 여러가지 SNS에 똑같이 적용됩니다.
이런 SNS는 몇 가지 특유의 성질이 있는데요. 첫째로, '전 세계적인 자기 공개 장소'의 역할을 합니다. 친구가 어디 여행을 가서 부럽고, 한 다리 건너 지인이 명품 가방을 사서 질투나고, 이런 것은 차치하고서라도요. 예를 들어 출신 대학과 이름, 사는 지역 명을 엮어 구글에서 검색을 하면 그 사람의 페이스북 계정이 등장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제한만 걸어놓지 않으면 염탐할 수 있어요. 이메일이나 계정은 어떤가요? 모 사이트에 가입한 계정을 구글링하면, 그 사람이 어떤 사이트에 들어갔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살펴볼 수도 있어요. 반대로, 이름과 직업을 알고 있다면요? '응급구조사 김똘똘'씨를 구글에 검색했더니,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몇 학번인지, 학창시절 다음 카페에 어떤 과제를 올려 놓았는지도 찾을 수 있었답니다. 마치 빅 브라더가 우리를 보고 있듯이요.
둘째로, '전 세계적인 광장'의 역할을 합니다. 이 말인 즉슨, 발 없는 말이 SNS를 만나면 가히 빛의 속도로 전 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합니다. 과거 인터넷 뉴스만 있던 시절에는 TV를 보거나 직접 인터넷 뉴스를 검색해서 소식을 접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SNS의 타임라인에서 궁금하지 않은 정보조차 마구마구 뿌려줍니다. 네이버 뉴스로 얻는 소식보다 SNS에서 알 수 있는 소식이 수 십 배는 많아요. 그리고, 차라리 국제 뉴스면 다행입니다. 내 지인의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연애는 잘 하고 있는지, 결혼은 했는지, 사업은 잘 됐는지, 친구 관계는 어떤지 등등요. 게다가 이 SNS라는 녀석은 '좋아요'로 우리의 판단을 나타낼 것을 강요하죠.
이 두 가지 특성이 결합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시민이 빅 브라더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구나 타인의 정보를 쉽게 열람할 수 있고, 소식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SNS로 전해진 그 사람의 정보와 삶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더 큰 문제는, SNS에서 보이는 이러한 정보들이 누군가에게 왜곡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정보의 첫 시작이 잘못된 뉴스였든, 누군가 악의를 가지고 편집한 것이든 간에, 일단 소문에 불이 붙으면 빠르게 퍼져나가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행복한 소식보다 불행한 것, 거짓된 것이 더 자극적이고, 빠르게 전파되곤 합니다. 그리고 그 말들을 나르는 것은 엄지 손가락의 간단한 터치입니다. 시민이 시민을 판단하고, 조종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나쁜 일을 했다고 여겨지면 그 사람이 세계 제일의 나쁜 놈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주호민 작가의 논란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작 주호민 작가는 어떤 특정한 사상을 옹호할 생각이 없이, 단지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시민 독재'에 대해 발언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자극적이고 단편적인 헤드라인을 단 짤막한 카드뉴스들이 SNS로 퍼져나가고, 사람들은 싫어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다 보니 논란이 굉장히 커져버렸습니다. 안타까운 일은, 주호민 작가가 "그런 의도가 아니었습니다"라며 사과를 했지만, 원체 사람들은 논란에만 관심이 있지 사실 관계가 밝혀지는 것에는 흥미가 없었답니다. 바꾸어 말하면, 사람들은 시민 독재 행위에만 관심이 있을 따름입니다. 사실을 밝히고 정의를 추구하는 데에는 목적이 없습니다. 비록 '정의의 사도'라는 가면을 쓰고 있지만요.
시민 독재는 '도덕적 우월성'이라는 근간 위에서 탄생했습니다. 내가 남들보다 낫다는 생각입니다. 남들이 그릇된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를 비난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소식은 점차로 악의가 덕지덕지 붙어 SNS를 통해 퍼져나가고, 순식간에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내가 남들에게 잘 보여야 하고, 정치적으로 반드시 올바른 사고를 해야 하며, 남들이 빈틈이라도 보이게 되면 마구마구 헤집게 되었습니다. 서로에게 관심을 갖기보다는 관음을 하게 되고, 감시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지닌 사상으로 처벌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상으로 차별받을 이유도 없습니다. 세상에는 수십억의 인간 군상이 있고, 개들 중에는 좋은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나쁜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입니다. 다만 이러한 사상이 실제의 문제 행동으로 이어졌을 때에는 법적인 제재가 당연히 내려져야 합니다. 예컨대, 우리나라 사람이 극단적인 친일 사상을 가졌다고 가정합시다. 그리고 우연한 계기로 이 사람이 가진 사상이 드러났습니다. 친일파적인 행동을 한 것도, 친일을 하는 글을 적고 시위를 한 것도 아니고요. 그냥 친구랑 카톡한 내용을 누군가가 엿보아서 소문을 내고, SNS에 게시했다고 생각해 봐요. 이 사람에 대한 정보가 전국으로 퍼져나갔고요, 어디선가 사진이 찍혀 얼굴까지 공개되어 버렸어요.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 마땅한 일인가요?
이 사람에 대해 개인적인 호오가 있을 망정, 그 사람이 극단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다 한들 법적인 처벌을 받을 이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이 전국으로 퍼져나가 길거리에서 눈총을 받고, 쌍욕을 들을 이유가 되지도 않습니다. 이는 '모든 사상이 존중받아야 한다'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모든 인간에게는 사상의 자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인권 감수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사람이 나쁜 사상을 가졌다는 것이 비판의 대상이 될 망정, 이 사람에 대한 소식이 알지도 모르는 전국의 사람에게 퍼져나가는 것이, 인생이 송두리채 박살나는 것이, 사람들이 이 사람에 대해 안좋게 말하며 악의를 덕지덕지 뭍여 퍼나르는 것이 합리화되지 않습니다. 인권이 존중받지 못하는 시대가 시민 독재의 시대입니다.
심지어는 이러한 시민 독재는 초법적인 양상을 띄기도 합니다. 범죄자에게는 적당한 양형 기준에 맞게 처벌이 내려져야 합니다. 그런데 SNS등을 통해서 극단적인 국민적 공분을 사게 되면, 판사는 국민 여론을 고려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내가 한 일이 아닌데 왜곡된 채 확산되어 인생이 힘들어진 사람들도 부지기수입니다. 또,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였는데 이것이 시민들의 눈길을 끌어 집단적인 목소리가 표출되게 되면, 납득할 수 없는 불합리한 법안이 발의되고 통과되기도 합니다. 혹은 정말로 잘못한 일이 있는 국회의원인데, 특정 집단을 중심으로 SNS 등을 통한 선동이 이루어지게 되면 처벌을 받지 않거나, 유야무야 넘어가기도 합니다. 시민 독재는 다른 의미로 권력자에게 유리합니다.
3. 마치며
당과 빅 브라더가 시민의 삶과 사상을 독재하던 가상의 시대를 다룬, 디스토피아 계의 명작 <1984>를 읽어드렸습니다. 비록 많은 분이 보는 서평은 아니지만, 자칫 민감하게 느껴질 수 있는 주제를 너무 거칠게 다룬 것 같아 마음이 쓰이네요. 혹여 읽는 와중 불편한 마음이 드셨다면 사과드립니다.
<1984>의 창작 배경은 2차 세계대전과 냉전, 그리고 이념 갈등입니다.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사회는 우리가 생각하는 공산주의 사회와 참으로 유사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비록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동시에 시민 독재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다소 주제넘고 길게 말씀드렸습니다. <1984>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크게 다가옵니다. 우리 사회에서 빅 브라더가 '시민'이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실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다른 사람을 살필 수 있고, 얼굴을 숨긴 채 비판하고 검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실시간으로 전국으로, 전 세계로 퍼져나갑니다. '자유'라는 이름 아래 인권을 짓밟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파괴하는 행위들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으니, 어찌보면 빅 브라더와 당이라는 명확한 책임 소재가 있는 <1984> 속의 세계보다 인생 난이도가 높은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뻔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공동체적 감수성을 키우고, 인권 감수성을 키워야겠지요. 평화와 자유, 협력, 배려, 공감, 존중 등의 역량이 함양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며 비판하기 이전에,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있어야 합니다. 어찌보면 '높은 시민성'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거 참, 말은 쉽죠? SNS로 남들 욕하기는 쉬운데 말이죠. 한편으로, 이렇게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안아줄 수 있는 따뜻한 마음 또한 SNS로 전파할 수는 없는 걸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왠지 힘들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SNS가, 시민 독재가 참 무섭습니다.
다음 글은 아들러 심리학의 대중적 교본, '미움받을 용기'를 읽어드리겠습니다. 이번 시간은 여기까지 할게요.
202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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