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를 읽어드리겠습니다.
2021.07.31 - [2. 책을 읽어드려요/인문교양서] - [서평] 공정하다는 착각 (2) - 完 이전글
1. 기차와 철학
'익스프레스', 기차 여행을 할 때 쓰는 말입니다. 철학의 대명사, 그리스의 철학자인 소크라테스를 가져와 지은 제목,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소크라테스와 함께 하는 기차 여행일 뿐 아니라 "철학 행 기차"가 아닐까 합니다. 기차를 사랑한 철학자는 많습니다. 기차가 주는 고즈넉함, 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 백색소음 등이 사색을 도와줬나 봅니다. 하지만, 이런 물리적인 특성 말고 어떤 부분이 많은 철학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을까요?
기차는 언제나 달립니다. 자연을 벗 삼아, 인간이 만든 선로를 따라서요. 목적지를 향해 갑니다. 여러 역을 거치면서요. 사람들은 각자 같은 기차에 들어차 있습니다만, 각기 다른 좌석에서 다른 생각을 하며 다른 종착지를 목표로 합니다. 누구는 빨리 내리고, 누구는 늦게 내립니다. 또, 누구는 먼저 타고, 누구는 나중에 탑니다. 누구와는 가까이 있지만, 누구와는 멀리 있습니다. 우리는 2021년의 한국을 살아가지만 각기 다른 직업과 역할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남들이 정해준 길로 가기도 하고, 내가 원하는 길로 가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는 공통적으로 탄생과 죽음이 주어졌지만 삶의 궤적을 밟아가는 방식은 각자 다릅니다. 아무래도 이런 특성-인생과 같은 점, 다른 점-이 기차를 철학자들의 사색공간으로 만들어 주지 않았나 합니다. 그리고, 이 책이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인 이유입니다.
이 책이 매력적인 이유는 삶 속에서 철학을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인문학, 철학을 배우는 목적이 무엇인가요? 연구가 목적일 수 있습니다. 논문을 쓰고, 학위를 따는 것처럼요. 누군가에겐 생계의 유지수단일 수 있습니다. 또는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 목표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현학적으로, 멋있게 말하고 싶은 지적 허영의 발로일 수 있습니다. 순수하게 재미를 추구하는 것일 수 있지요. 어떤 것이 좋고, 어떤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모두 소중한 이유입니다.
다만, 철학의 근본과 발원을 '삶'과 떨어뜨려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철학은 "왜 사는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문득 절친한 형이 한 말이 생각이 납니다. "철학가는 기본으로 나사가 한 군데 빠진 사람일 수밖에 없어." 철학가는 삶의 결핍으로부터, 그리고 고통과 의문점으로부터 자신의 철학을 수립합니다. 그리고 그 철학이 수 백 년, 수 천년을 지나서 우리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당연히 우리의 삶에 뜨겁게 다가오기 때문일 것입니다. 조금 더 진지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모두 우리 인생의 철학자입니다. 누군가 '개똥철학'이라고 욕할지라도, 내 삶의 이유와 방식,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나름의 답을 내린다면 다른 사람들의 그 어떤 철학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소크라테스의 산파법, 에피쿠로스의 아타락시아, 불교의 색즉시공, 루소의 자연주의, 칸트의 정언명령, 니체의 영원회귀...... 제법 멋있어 보이는 말은 참으로 많습니다. 아는 척 하기는 좋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공부를 하고 지식을 쌓더라도 그것이 내 삶과 동떨어져 있는 것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애초에 철학자의 방대한 사상을 하나의 개념으로 퉁 쳐서 설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몹쓸 짓입니다. 다시, 우리는 모두 우리 인생의 철학자입니다. 철학가들의 삶의 고뇌를 내 삶과 함께 생각하며 인생을 탐구하고 살아갈 힘을 얻는 것. 아무리 채워진다 하여도 결코 충족될 수 없는 물질적인 욕망보다 더욱 소중하지 않겠습니까? 내 인생의 이유와 즐거움을 찾는 사람.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언젠가 찾아올 노화와 병, 죽음에 대해서 담담하고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더욱 멋진 사람 아니겠습니까?
2. 삶 속에서 철학하기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의 목차입니다.
저자, 에릭 와이너는 기차 여행을 소재로 삼아 철학가들의 사상을 풀어냅니다. 철학가의 고향, 좋아했던 곳, 사고의 전환을 맞이했던 중요한 장소들을 직접 방문하면서요. 철학가의 삶과 저자의 삶을 함께 녹여내며 이야기합니다. 지금껏 읽었던 모든 다이제스트 철학 인문서 중에서 단연 술술 읽힌 책이었는데, 삶의 모습을 철학가의 사상과 함께 편하고 유머 넘치게 보여주었기 때문인 듯합니다. 그리고 번역도 너무 매끄러워서 한국인이 쓴 책인 줄 알았답니다.
눈치 빠른 독자님들은 이미 알아채셨을 것입니다. 재미있게도, 이 책은 세 부로 이루어져있는데, 각각 인생의 어떤 단계를 연상시킵니다. 새벽, 정오, 황혼이 그러하지요. 이는 새벽부터 이어지는 기차 여행을 연상해보면 볼 수 있는 풍경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인생과 기차 여행의 유사점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각 부의 소제목을 살펴보면, '1부. 새벽'에는 아기가 침대에서 일어나 오감을 깨우고 걷는 것이 연상됩니다. '2부. 정오'에는 성장하여 인생을 정열적으로 살아가는 젊은이가, '3부. 황혼'에서는 인생을 멋지게 정리하여 죽음을 준비하는 노년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저자가 구렁이 담 넘어가듯 여러 철학가들의 어려운 사상을 슬쩍슬쩍 집어넣어 술술 읽히게 만든 책이라 그런지, 읽을 때는 시간 가는지 몰랐는데 막상 책장을 덮고 나니 책 속의 내용을 적기에는 망설여집니다. 제 글은 개인적인 감상과 더불어 책 속 내용의 요약을 어느 정도 담고 있는데, 애초에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가 극도의 철학 요약문을 마치 에세이를 쓰듯 삶과 섞어 풀어낸 글입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함부로 책의 내용을 적으면 요약의 요약이 되고, 내용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제게 다가온 책을 아주아주 주관적으로 읽어드릴 수밖에 없겠네요. 저는 전반적으로 이 책을 읽으며 불교의 사상을 느꼈습니다. 음, 불교의 명상 중 하나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마음챙김 명상이라고도, 위빠사나 명상이라고도 합니다. 이 명상 방식은 불교의 사상을 본땄는데요, 종교적 색채를 떠나서 힘든 시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마음의 안정을 얻고 튼튼한 정신을 얻기 위해 많이들 한답니다. 이 명상은, 내 마음속에 일어나는 모든 생각과 감정을 단지 바라보며 시작합니다. 이런 생각과 감정이 어떤 원인에서 발생하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든, 어떤 감정이 행복을 주든 슬픔을 주든 모든 판단을 유보한 채 바라만 봅니다. 하지만 이는 거부도, 수용도 아닙니다. 그냥 내 마음의 작용을 자연스레 바라보기만 할 뿐이니까요. 뭐, 결과적으로는 이런 연습으로 생각이나 감정의 발생이 줄어들고 고요한 마음상태가 되고, 내가 살아가는 이 현실에 일희일비하지 않은 채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책을 보며 이 명상이 생각난 이유는, 저자가 삶을 대하는 태도로서 빌려온 철학가들의 사상을 마치 불교의 그것과 비슷하게 풀어냈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섣부른 판단을, 여기서 발생하는 욕망을 유보하기를 권유합니다. 예를 들자면, 2부. 정오의 '시몬 베유처럼 관심을 기울이는 법'에서는 진정한 관심이 '수동성'에서 온다고 말합니다. 제가 어떤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인다고 생각해 볼게요. 만약에 적극적으로 관찰하고, 관심을 기울이자면 이 사람의 외모와 행동, 그리고 옷차림 등을 면밀히 살피고 나름의 판단을 내릴 것입니다. '이 부분은 마음에 드네.', '이 사람은 물질적인 여유가 있나 본데?', '어린 시절 상처를 받았나?', '아이고, 이건 별로야.' 식으로요. 하지만 이는 내가 판단하는 것이지, 그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지요. 그보다는 자아를 벗겨내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권유합니다. 1부. 새벽의 '소로처럼 보는 법'은 어떠한가요? 이 역시, 대상을 볼 때 나의 주관을 사용하여 멋대로 판단한 뒤 기뻐하고, 슬퍼하는 것을 지양해야 합니다.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볼 때 다가오는 행복을 느끼라는 것입니다.
물론 제가 적은 내용은 여러 생각의 갈래 중 하나일 뿐이지, 저자가 수동성과 열린 마음(?)만을 강조하지는 않습니다. 애초에 빌려온 철학가들의 면면이 쇼펜하우어, 니체, 몽테뉴 요런 사람들인걸요. 하지만 이러한 내용까지 제가 섣부른 판단을 곁들여 여러분께 읽어드리는 것은 이 책의 저자가 원치 않을 것 같습니다. 너무 재밌게 잘 읽은 책이니 여러분이 꼭 구매하셔서 즐기셨으면 합니다.
3. 우리는 모두 우리 인생의 철학가
'우리는 모두 우리 인생의 철학가다'라는 말을 곱씹게 되었습니다. 철학은 근본적으로 인생에 대한 물음과, 그 나름의 답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만의 우주 속에서, 각자 다른 인생을 살아가니 각자 다른 답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틀린 답(애초에 틀린 답이 없겠지요)을 내리거나, 답을 찾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인생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것, 즉 철학하지 않는 것이 슬픈 일입니다.
만일 여러분의 삶이 통째로, 영원히 반복된다면 어떻겠습니까? 독자 여러분이 죽고 난 후에요. 이 세상에 태어나 만난 사람들, 다녔던 학교, 다녔던 직장, 겪은 행복하고 슬픈 일과 죽음이 그대로, 셀 수 없는 시간만큼 무한히 반복된다면요. 윤회와는 다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같은 삶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반복될 것이라는 사실도 알 수 없습니다. 일어났던 일, 일어날 일 무엇도 바꿀 수 없습니다. 이런 '영원회귀'가 사실인지, 사실이 아닌지는 중요치 않습니다. 이런 가정 속에서, 여러분은 무한히 겪을 삶의 모습을 기대하시겠습니까, 끔찍하게 여기시겠습니까? 후회하지 않을 결정을 순간, 순간 내릴 수 있을까요? 여러분께 다가올 모든 일을 다시 겪을 자신이 있나요? 어쩌면 우리 인생의 철학을 발견하고, 탐구하는 것이 그 답일지 모릅니다. 삶에 힘을 주는 철학책,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일독을 권합니다.
책을 읽으며 삶을 꼭 안아주는 느낌을 받은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가장 소중한 친구가 선물해 준 책입니다. 친구에게 무한한 감사와 사랑을 보내며, 글을 마칩니다.
202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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