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저번 글에 이어서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의 제 2부. 농업혁명을 읽어드릴게요.
키워드
농업 혁명, 희대의 사기극
그래도 인구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
사유재산과 계급의 발생, 법이 생기다
상상 속의 실재에 구속받는 사피엔스
1. 인지혁명을 너머 농업혁명으로
저번 시간에는 책의 제 1부, 인지혁명을 읽어드렸습니다. '호모 ~'로 나타났던 옛날 인류의 여러 속 중에 '호모 사피엔스'만이 남아있다는 말씀을 드렸어요. 물론 그 유전자 속에는 다른 속의 조상님(?)이 조금 섞여 있을 수도 있지만요. 그리고 그 이유로, 사피엔스에게만 인지혁명이 나타났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인지혁명은 언어의 혁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전달하는 능력으로 사피엔스는 몇 백, 몇 천만, 혹은 그 이상의 개체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족 정신, 정치권력, 종교 등을 사용해서요. 이를 바탕으로 다른 동식물과 종족들 위의 최상위 포식자로 자리할 수 있었지요.
이번 장에서는 그 다음 혁명으로 농업혁명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독자의 편견을 바꾸어 버립니다.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농업 혁명은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라리 박사는 농업 혁명을 '역사상 최고의 사기'라고 단언하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우리는 선조들이 힘들고 고통받던 수렵채집 시절을 지나 안정적인 경작 생활을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추위에 떨고, 더위에 고통받으며 죽을 위험을 거쳐 야생 동물을 사냥하고, 만약에 동물이 없으면 쫄쫄 굶으면서 다른 지역으로 터덜터덜 걸어가고, 그러다 지쳐 쓰러져 죽는 사람들이 생기고....... 반면에 농사를 지으면 얼마나 편해요. 규칙적으로 씨 뿌리고 밭 갈면 먹을 것이 생기잖아요. 그러니까 농경 사회가 수렵채집 사회보다 발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농경 사회는 생각보다 풍요롭지 않았답니다.
① 먼저 농사는 도깨비방망이가 아닙니다. 밀의 씨를 뿌린다고 바로 싹이 발아해 뚝딱 먹을 수 있는 탄수화물이 되는 것이 아니에요. 손도 많이 가고, 날씨, 병충해 등 주변 환경에도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게다가 탄수화물에 극히 편중된 식사를 하게 되면서 오히려 농경사회 속 우리의 선조 사피엔스들은 골골대게 되었답니다. 오히려 커다란 매머드를 하나 사냥하는 것이 훨씬 나았습니다. 풍부한 고기가 생기면 온 부족은 꽤 오랜 시간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한 해 단위로 농사가 될지, 안 될지 머리 아픈 농부와는 달리 며칠 단위로만 고민을 해도 되던 것은 덤이고요. 그리고 주변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영양소를 섭취하는 것이 훨씬 건강했어요.
② 사피엔스의 자연적인 신체 구조에도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허리를 구부리고 땅만 쳐다보다보니 만성적인 목, 척추 디스크에 시달리거나 탈장이 일어나기도 했어요. 사피엔스는 오랜 시간 들판을 달리고, 집단적으로 동물을 사냥하고, 나무 위에 있는 열매를 따기 편리한 신체 구조로 진화했습니다. 문득 오늘날 사무실에서 목과 어깨, 허리의 통증을 호소하는 우리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③ 그리고 아쉽게도 몇 해, 수십 해가 지나 농경 사회에 정착해버린 우리 선조들은 다시 수렵채집 사회로 돌아갈 수 없었어요. 인간은 앞날을 볼 수 없으니까요. 어쩌면 그들도 '매 해 나오는 밀을 수확 하면 우리는 안정적으로 살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농사가 그리 쉽지 않다거나 영양소가 편중되었다거나 하는 것을 알 수는 없었을 겁니다.
결코 풍요롭고 건강하지만은 않았던 농경 사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경 사회가 사피엔스에게 두 번째 혁명으로 꼽히는 이유는 바로 인류의 폭발적 증가를 불러왔기 때문이고, 여기서 계급이 나타났기 때문이며, 나아가 강력한 상상 속의 실재-곧 약속이 생기는 기반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① 농경 사회는 인구의 급격한 증가를 불러왔습니다. 비록 수렵채집 사회에서만큼 건강한 사람들은 아니었지만요. 밀을 대량으로 재배하며 주변 생태계가 파괴되고(화전 등을 사용한 건 덤이고요), 밀 재배량이 급격하게 늘어났습니다. 식량이 오랜 시간 비축되고 나름대로 높은 생산성을 보이게 되면서 높은 영아 사망률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이 이를 뛰어넘게 되었습니다. 이는 농업 혁명 자체가 사기고, 건강을 망가뜨리는 실패한 혁명이라 하더라도 사피엔스의 DNA를 기하급수적으로 퍼뜨려 진화적으로 성공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② 농부가 생산한 잉여식량을 바탕으로 계급이 생기고, 지배자가 등장했습니다. 수많은 인구가 생기고 거대한 국가가 세워졌습니다. 그러자 큰 집단을 유지하기 위한 약속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법률이 있고요, 재미있게도 관료주의적 통치를 위한 언어, 회계를 위한 숫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즉 실재하지 않는 것들을 사회 구성원과 약속했습니다. 이러한 약속은 상호주관적인 성질이 있는데요, 사람들의 약속이 존재하는 한 실제로 있는 것인 양-객관적인 것인 양 여겨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뒤이은 내용에서 '상상 속의 실재'와 우리 사피엔스의 관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2. 상상 속의 실재, 사피엔스를 규정하다
피라미드는 어떻게 지어졌을까요? 단순히 이집트 인부들이 이런 방식, 저런 방식으로 지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을 꼬셔서 이런 거대하고 종교적인 건축물을 지을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그 안에서 파라오가 내세를 꿈꾸며 편히 쉴 수 있었을까요?
눈치 빠른 독자님들은 아셨겠지만, '상상 속의 실재'를 있는 것인 양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여러 예시를 통해서 읽어보는 것이 좋겠어요.
① 수메르 언어가 남아있는 지점토 판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빌린 돈이나 구매한 물건, 지불한 금액 등이 있다고 가정할게요. 이러한 숫자나 언어는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렇게 부르고 이해하기로 약속한 것입니다. 이 소박한 시작은 체계적인 언어로 발전하는 디딤돌이 되어, 강력한 관료주의 사회와 그 정책들을 만드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② 기원전 1776년, 바빌론의 왕 함무라비가 세운 함무라비 법전이 있습니다. 함무라비 법전의 첫머리는, 여러 신이 함무라비에게 "정의가 지상에서 널리 퍼지고, 사악하고 나쁜 것을 폐지하며,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는 것을 방지하는" 임무를 주었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소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법전이 만들어졌죠. 실재하지 않는 신을 빌어 함무라비 법전에 신성을 부여하기로 약속했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진리라고 약속했습니다. 이로써 안정적인 통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③ 미국의 독립선언문은 ".......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이들은 창조주에게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를 포함하는 양도 불가능한 권리를 부여받았다."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말한 영국 식민지의 신민들은 사람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고 약속하고, 양도 불가능한 권리가 있으며 부여받았다고 약속했습니다. 물리 법칙처럼 무조건 객관 타당한지는 중요치 않습니다. 그들의 종교적인 신념을 바탕으로 약속했을 따름입니다. 그들의 사회에서 그것이 사실이라고 받아들여진다면, 사회 유지와 통치의 기반으로 작동할 것입니다.
재미있게도 함무라비 법전은 최고 지위의 신에게 신성을 부여받고 왕의 권위를 세웠는데, 독립선언문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창조되고 양도 불가능한 권리를 부여받았다고 합니다. 즉, 상이한 이념이 사회를 구성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그 내용이 어떠한 것이든지, 사회 구성원들이 약속한다면 사실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약속한 '상상 속의 실재'에 구속받습니다.
3. 마치며, 차시 예고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유발 하라리가 이 장에서 사용한 말입니다. 이 책이 도발적이다는 평가를 받게 해주는 것에 한 몫 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라리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정의가 없다는 말이 다소 이해가 됩니다.
프랑스 혁명의 꽃은 부르주아였고, 미국의 독립선언문의 꽃은 백인 남성이었습니다. 다시, 창조주에게 양도 불가능한 권리를 받은 것은 백인 남성이었습니다. 그 뒤에서 오랜 시간 흑인과 여성은 탄압받아왔습니다. 심지어 차별법을 제정해 법적으로 차별을 강제할 정도였습니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아직까지 사회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별적 약속은 법제화되었을 뿐 아니라, '낮은 계급은 더럽다'라는 본능적인 혐오에 기반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사피엔스임에도 불구하고요.
상상 속의 실재를 정의하는 약속은 기득권에 의해 이루어져 왔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특정 계급에게 계속된 실패와 악순환을 만들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 되었습니다. 지배자는 아래 계급을 더욱 혐오의 대상으로 만었고, 용이하게 통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정의'는 더욱 가진 자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정의는 없다'고 했지만, 이는 '정의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의 DNA속에 '객관적으로 정의롭게 행동하라'라는 유전 정보가 없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사회적 약속을 뒤집기 위해서는 큰 도전이 필요하고, 구성원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약속이란 것은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합의입니다. 보편적인 정의에 입각하여 더욱 인간적이고 윤리적으로 새로운 약속을 만들어 가는 것은 우리의 손에 달려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시간에는 제 3부. '인류의 통합' 중 화폐와 제국주의에 대해 읽어드리겠습니다.
다음 글
2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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